쿠르트 마주어가 격찬해 마지않았던 피아니스트 헬렌 황. 그녀가 오는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과 울산 그리고 대구에서 세 차례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최근까지는 종종 협주곡을 들고 한국을 찾았던 ‘천재 꼬마 피아니스트’로서의 헬렌 황이었지만, 이번 독주회를 통해 그녀는 진정한 ‘음악인’으로 청중들의 가슴속에 기억되고자 한다.

헬렌 황을 만난 건 지난 2월 말. 홍콩 필과의 협연 무대를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그녀를 장충동의 한 호텔로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약속 시간이 5분 정도 지났을까.
호텔 지하에서 이메일을 체크하느라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깜빡했다며, 애교 있는 웃음으로 양해를 구하며 등장한 헬렌 황. 이제 갓 스무 살이 지난 이 ‘아가씨’의 첫 인상은, 솔직히 직접 만나기 직전까지 나름대로 끊임없이 머릿속에 그려보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동안 여러 다른 잡지나 언론매체에 실렸던, 마치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이 느껴졌던 짧은 단발머리에 앙증맞고 깜찍한 표정의 ‘꼬마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만을 그렸었는데…. 막상 눈앞에 나타난 그녀는 화장기 없는 풋풋한 얼굴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내추럴한 까만 생머리를 가진, 이제는 ‘소녀’라기보다는 어엿한 ‘숙녀’로서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신동에서 음악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인식

오는 4월 16일 울산의 현대예술관을 시작으로 해서 18일 서울 호암아트홀 그리고 19일의 대구 무대까지, 이번 달 헬렌 황은 우리나라에서 모두 세 차례에 걸친 독주회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이번에 준비한 레퍼토리. 언제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가장 잘 어울릴 것만 같았는데, 헬렌 황은 이번 독주회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 작품110’을 시작으로 해서 쇼팽의 ‘발라드 4번’, 드뷔시의 ‘피아노 연습곡’ 그리고 프로코피에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소곡 10개를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 등, 고전에서부터 낭만과 인상을 거쳐 현대음악에 이르는 그야말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왕성한 음악적 소화력에 도전한다.

지난해 7월에도 쿠르트 마주어가 이끄는 뉴욕 필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던 헬렌 황은, 당시에도 파격적인 쇼스타코비치 선곡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그녀에게 따라붙는 ‘신동’이라는 수식어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엄연히 헬렌 황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것을. 실제로 만나 본 헬렌 황도 그랬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연주 무대를 통한 소위 사회 경험이 많아서일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보이던 시원시원하고 당찬 태도도 그렇거니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들을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스무 살의 발랄한 여대생이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성숙하게 느껴졌다.

사실 ‘신동’이란 말 그대로 ‘아이’라는 개념에 한정되어 있는 단어이다. 이제 엄연히 성인 연주자의 길로 들어섰는데, 어느 정도는 본인 스스로가 ‘신동’이라는 타이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클 것 같았다.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벗어나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하고 있는 질문이다. 사실 ‘신동’이란 타이틀은 내가 나 자신에게 붙여준 것이 아니다. 에이전시나 기획사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종류의 어떤 특정한 타이틀을 붙여줌으로써 아티스트의 상품성을 배가시켜주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잠재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든 (조금은 억지로라도) 나름대로 규격화를 시켜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 역시 그동안은 ‘신동’이라는 틀 속에 갇힌 채, 진짜 나의 음악과는 별 상관없이, 그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신동’으로만 비춰졌었다.

하지만 자칫 나 스스로도 그 ‘신동’이란 타이틀에 익숙해진다면, 음악을 즐기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는 가장 근본적인 음악관마저도 흐트러뜨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