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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 가는 연주자가 있다. 언제 어떤 레퍼토리를
들고 찾아온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심 없이, 기대감 하나만을 갖고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기꺼이 공연장을 찾게 되는 그런 연주자. 우리에게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런 그가 이번 가을 ‘프로코피에프’와 ‘쇼팽’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2003년 오늘 세계에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존재한다. 20세기 초하고만 비교하더라도,
그 수도 수려니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평균 연령 역시 많이 낮아졌다.
물론 그만큼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 연주자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이론상으로는 예전보다 일찍부터
많은 연주자들이 오랫동안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예술 활동을 하는데
경쟁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대다수의
연주자들 스스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크게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확실한 나만의 레퍼토리, 독특한 나만의 색깔은 이러한 상황에서 연주자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가장 든든한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돋보이는~’
‘○○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를 하나쯤 달지 않고 있는 연주자는 아마도 거의 없는 듯하다.
반면 연주자가 그 특정 작곡가가 아닌 다른 작곡가의 레퍼토리에 도전한다고 하면 개인적으로는
그 연주자를 참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글쎄, 이건 어떨는지…’ 하며 한번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건우는 진정 신뢰를 주는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라벨을 위시한 프랑스 음악의
스페셜리스트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했지만 이후 프로코피에프·스크리아빈·라흐마니노프·바흐-부조니·포레
등 그동안 그가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한 작곡가들은 모두 백건우의 레퍼토리로 흡수되었고,
이제 그의 이름을 수식하기 위해 그 앞에 특정 작곡가를 하나 따로 떼어내기에는 무언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몇 년 전 어느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자가 파리에서 그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는데 이야기 도중에 백건우가 다음
레퍼토리로 생각하고 있는 작곡가의 이름을 몇몇 대더란다. 그 뒤를 이어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의 음악 여정이 늘 그래왔듯, 그 말을 입 밖에 냈을 때 백건우는
이미 그 세계로 접어든 상태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표현한 많은 말들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휴머니즘을
찾았다, 프로코피에프
오는 10월 23일과 25일 이틀간에 걸쳐 백건우는 LG아트센터에서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다섯 곡 전곡을 완주한다. 오케스트라에는 서울시 교향악단이 함께 하며 지휘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지휘자 루카 파프(Luca Pfaff)가 맡는다.
최근 들어 전곡연주가 부쩍 많아진 우리의 공연계인지라, 특별히 전곡연주에 초점을 맞추기도
왠지 식상한 것 같고…. 그런데 백건우에게 있어 전곡연주 자체는 그다지 의미가 없단다.
“전곡을 연주한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의미가 없죠. 스포츠같이 ‘육체적으로 이것을 해냈다’라는
것은 음악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요. 다만 우리나라의 음악 애호가들이, 물론 유럽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언제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이렇게 한꺼번에 들어볼 기회가
있겠어요. 어쩌면 평생에 이번 한번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나는 한국의 청중들에게
프로코피에프라는 작곡가를 보다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번 전곡연주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전곡 ‘녹음’은 많아요. 하지만
공연장에서 듣는 전곡연주는 분명히 음반과는 다르겠죠. 요즘 세상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 너무나 많아요. 마음만 먹으면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것도 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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