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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그가 소개되었던 자료들을 찾아보니 20대의 순수하고 앳된 시절의 옛 모습들이 새롭고 신선하다. 15여 년의 시간을 뚫고 빛바랜 사진 속에는 수줍은 듯한, 그러나 뭔가 강한 의지에 차 있는 것 같은 발그스레한 홍안의 젊은 청년이 환하게 웃고 있다. 얼마 전 찍었다는 그의 사진을 다시 보니 반짝이는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어린 시절의 샘솟던 영감이 시간과 함께 고갈되어버린 불운한 음악 천재가 있는가 하면, 세월과 함께 진한 향을 내며 음악적 상상력을 넓혀 나가는 예술가들도 있으니... 그는 확실히 세월과 함께 더 깊이 있고, 사려 깊고, 인간적인 연주가로 성숙해 온 음악인인 듯싶다. 헬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머나먼 땅 독일에서의 그의 전화통화 음성은 낮고 차분했다. 우수개소리지만 사실 처음 헬로?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첼로? 하고 말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목소리도 참 첼로와 닮아있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즈음 그는 자신의 이미지가 첼로와 비슷하다는 말을 꽤 많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 노래하는 악기, 첼로를 사랑했던 청년 “어린 시절부터 전 음악과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어요. 성악가셨던 아버지(조상현)의 노래를 들으며, 또 두 누나 (피아니스트 조영방,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와 함께 음악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첼로를 접하게 되었죠. 언젠가 다시 태어나도 첼로를 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그러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첼로의 선율이 가져다주는 그 깊은 영감, 그 속에 흐르는 아름다운 감성이 결국 메마른 인간의 영혼을 구원해 줄 거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조영창은 한국에서는 1997년부터 화음 쳄버 오케스트라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97년부터 매년 7인의 음악인들에 참여해 왔다. 머나먼 이국 땅에 그가 있어서 그런지 고국의 팬들은 그가 언제쯤 고국에서 연주회를 갖는지, 무슨 계획들이 진행되는지 그의 행보에 늘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한다. 사실 연주회 이름만 다를 뿐 청중들에게 보이는 아티스트들이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는 공연계의 현상들을 고려해 본다면 등장인물이 매번 비슷한 음악회를 봐야 하는 팬들에게 조영창이라는 연주가는 어딘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듯한 신비감 같은 것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이번 연주회를 통해 선보이게 되는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2번 으로 피아노에 정명훈과 예핌 브론프만, 바이올린에 슐로모 민츠과 다이신 카지모토, 첼로에 미샤 마이스키와 조영창, 비올라에 유리 바슈매트가 함께 호흡을 맞춘다. “모두가 재능 있는 뛰어난 연주가들이고 처음 무대에 같이 서는 연주가들도 있어서 저도 이번 공연에 기대가 큽니다. 고국에서 연주하는 거라서 의미가 더 깊게 느껴지고요.” 세기의 일곱 명의 솔리스트가 함께 하는 무대로 계획된 이번 공연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해를 맞아 진행되는 빅 콘서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 우아한 백조처럼, 포효하는 표범처럼 ‘격정적이면서 서정적인 연주자’. 그에 대한 연주평은 늘 이렇게 상반된 언어로 표현되곤 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 그러나 어느덧 그의 연주장은 높이 솟아났다가 다시 깊이 침잠하는 뜨거운 열정과 섬세한 부드러움이완벽하게 조화를 이뤄내는 ‘고요한 폭풍의 현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의 음악의 세계는 이미 박제된 언어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안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일찍이 첼로계의 거장이었던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각별한 애정을 받으면서 음악계의 주목을 끌었던 조영창. 그는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숱한 음악계의 거장들과 인연이 깊은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예원학교 2학년 때 내한한 야노스 슈타커에게 연주를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피바디 음대·커티스 음악학교·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등을 차례로 거쳤고, 로스트로포비치 콩쿨 입상으로 그와 인연을 맺는다. 조영창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쿨에 참가한 것은 1981년으로 제 2회 때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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